평론

여성 가계도, 자아를 발견하다. / 김기현

다우징 2025. 3. 4. 11:58

 

 

- 여성 가계도, 자아를 발견하다. -

전시리뷰<시방아트60호. 2024> 이은정 개인전 2024.1.30-2.8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박물관 기획전시실

 

김기현 미술칼럼니스트

 

1. 여성미술과 여성주의 미술

 

  여성미술은 여성 작가들의 미술로 여성적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작품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한국의 여성미술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를 논하는 것은 시각의 관점에서 다르게 출발한다. 관점의 출발 중심에는 여성미술을 지칭하는 해석의 차이로 미술 사가들의 관점과 미학자, 미술 비평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 문화적으로 해석되는 성의 문제와 근본 생물학적 여성성의 정의로 보는 존재론이다. 일반적으로는 여성미술은 성이라 하는 Gender에서 여성과 남성을 분류하지 않는 포괄적 의미로 미술내의 여성성을 의미한다. 이는 여성의 가치를 수용하는 긍정적 의미와 여성 주의적 가치의 미술로 분류를 한다. 단지 여성의 화가가 그린 그림이 여성미술이라고 단정 짓기는 미적 시각에서 편협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남성이 그린 여성의 그림이 여성미술인가의 정의 또한 문제를 안고 있다. 여성미술을 이해하고 비평을 하기 위해 적용되는 그림이 남성 화가들의 그림에서 여성을 그린 그림에서 재현된 여성성이다. 이는 작가 이은정의 인터뷰 내용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부분으로 그녀가 표현 하려는 작업의 과정과 여성으로서의 화가 지위에서 스스로를 발견해 온 과장으로 보인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전시작품들 대부분이 여성을 그린 그림들 이지만 여성화가가 그린 그림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하였다고 게릴라 걸즈는 주장한다. 그러면서 여성들에게 옷을 벗으라고 외쳤다. 이들은 미국을 떠나 전 세계 미술계에 큰 메시지를 던졌다. 여성을 이해하기 위해 여성미술이 남성에 의해 그려진 여성이라는 아이러니가 현실이 되고 있는 지점이다. 여성과 미술의 저자 주디 시카고와 에드워드 루시 스미스는 그들의 책에서 여성 미술가는 많다, 그러나 위대하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역설한바가 있다. 선사에서부터 근대까지 미술로 평가되는 여성은 남성 권력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는 지식의 권력이 아닌 힘의 권력으로 무장된 불평등의 산물이다. 여성과 미술은 열 개의 장르로 그 코드를 분류하여 저술되었다. 여신, 여성영웅, 모성과 일상 속의 여인, 덧없는 일상 그리고 정체성 등이 그것이다. 여성의 시각과 여성의 언어로 여성미술을 여성 주의의 반 권위로 성 분배에서 균형의 미술사로 평가된다. 여성 주의적으로 해석을 하면 남성성과 구조적 권력관계로 지배의 상하 개념이고, 생물학적 지위 안에서 여성의 미술이 여성미술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여성주의 및 여성주의 미학을 바탕으로 1970년대 초부터 전개된 일련의 미술운동을 이야기한다. 넓은 의미에서 여성 주의적 시선으로 창작된 모든 미술형태가 페미니즘 미술이라고도 불린 것이다.

  여성주의 미술은 사회적으로 고착된 성 역할을 의미하는 젠더에 주목하여 젠더가 예술, 예술가, 미적 가치에 관한 사상을 형성하는 데 주는 영향, 더 나아가 여성을 대상화하고 젠더 역할과 정체성을 고착화 시키는 예술과 대중문화를 비평하는 여성주의 미학에 바탕을 둔다. 시각적 아름다움보다는 사회·정치적 메시지가 주류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주의가 지향하는 변화를 고취하기 위해 사회 속 문제를 드러내고, 기존에 표준이라 믿었던 것들에 의문을 갖도록 주의를 환기시키는 데 그 목적을 둔 이유이기도 하다. 여성주의 미술은 회화나 조각과 같은 전통적 매체뿐 아다. 다양한 개념예술과 행위예술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변화의 형식으로 다변화되었으며 참여미술, 공공미술, 뉴미디어 미술 등의 방식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2. 탈 중심화로 여성미술의 표현과 재해석

  여성의 경우 성의 분류 표현으로 보았을 때 생물학적인 여성과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되는 여성성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남성과 구분이 되는 여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여성성이 부여되고, 여성성을 보유함으로써 여성, 즉 남성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이 된다. 결국 미술의 중심은 남성성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프로이드는 여성이라는 논고에서 여성성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리비도의 욕망에 의한 성장은 남성성과 여성성으로 구분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프로이드의 성 심리 이론은 인간의 양성적 본성을 가정하지만, 결국은 남성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신체적, 생리적 결정 주의와 보편적 인간상을 추정하기 때문에, 결정론과 인본주의를 배격하는 후기 구조주의와 후기 페미니즘으로부터의 비난을 면치 못한다. 동시에 개인적 성심리만 을 취급함으로써 개인주의와 자유사상의 약점인 역사성과 사회성의 결핍이라는 오류를 범하기도 하는 것이다. 2세대 여성이론은 일반적으로 후기모더니즘, 후기구조주의라 총칭하는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과 마르크스주의, 데리다의 형이상학 비판이다. 라캉의 주체성 이론은 성 심리를 언어적 영역으로 도출해 냄으로써 심리의 사회적 확장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라캉에 있어서 오이디프스 컴플렉스는 신체적 성기를 대신 상징적 남성성을 축으로 하는 주체성의 개념화 혹은 언어화 과정이다. 부계 사회의 특권과 가치를 규정하는 남성성은 언어 세계에서 나를 소외시키는 인간 상실의 상징인 동시에, 여성에게는 여성적 주체를 고립시키고 여성성을 소외시키는 결핍의 상징이다. 남성성은 여성에게 인간성의 상실과 성의 상실이라는 이중 압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라캉의 이론은 해부학적 결정론을 초월하여 성적 주체란 의미화 과정을 통하여 구축된다는 후기 구조주의적 비결정론으로 귀결되기에 탈 남성 중심 미술에서 해방의 페미니스트들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사회구조의 중심이 남성성에 있었던 시기에서 후기 모더니즘은 다양성의 회복 단계로 미술세계의 다변화와 수용으로 중심의 해체가 탈 남성화로의 전환인 것으로 해석한다. 즉 미술계의 전환에는 생태 여성주의와 함께 생태관을 여성주의와 결합하게 되면서 미술계에서도 생태이론을 접목한 작가들이 활동으로 시대전환 방식을 다원화로 선택하고 활동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전통적 인식론의 거부가 경험의 주관성으로 표면에 등장을 하고 생태관이 대지와의 관계로 여성성은 확장을 한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여성미술이나 여성주의 미학자들은 남성과 성을 별개화한 시각으로 예술적 심미적 경험에 개입하기도 한다. 여성학자들은 여성작가 작품의 구체성이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평가하여 그 작업의 작용점에 주목하였다. 기존의 미술사는 여성이 지닌 성의 본질은 창조적이지 못한다고 보았다. 일부의 영역에서 여성과 예술가를 동일 시 하는 개념 자체를 모순으로 여기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뛰어난 여성예술가들의 존재조차도 예술사는 사건으로 기록을 하고 만다.

  “이들은 성을 잘못 타고난 기이한 존재가 되어, 남성적 역사에 포함되거나 여류라는 한정사를 통해 폄하되었다 이. 때 여자들의 역사는 전통 미술사에 부가되거나 병렬되는 유사예술사이거나 아류예술사로 사적 기록이 된다. 그리고 여성 예술가들을 칭찬할 때에는 섬세하고 세련된 감성을 부각시키면서 여성의 자연적 속성을 통해 여성의 영역을 한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반드시 여성주의가 남성중심의 보편성과 객관성을 보완하고 수정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편성과 객관성은 성취될 수 없는 허구적 이상으로서 이것을 성취하는 명목으로 가해지는 구분과 차별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여성주의는 맥락과 관점을 미학적 탐구의 중심에 놓고 차이와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도록 정치적 논의들을 포함하고자 한다. 김주현 ‘여성주의 미학과 예술작품의 존재론’. 아트북스, 2008. p.40.

  이처럼 여성 미학자들은 전통미학이 가진 관념에 대하여 여성의 심미적 경험과 남성의 심미적 경험은 동일한 작품에 대해 성별로 인한 차이가 생기는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고 이론적 문제를 제시하게 된다. 여성주의 미학이 심미적 경험에 성별과 관련된 관점은 인간의 예술적 경험 자체로 예술작품 경험을 구성하는 내적 인자로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성의 미술을 탈 남성화하는 구조에서의 후기모더니즘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의 동일시에서 출발하는 비 남성성의 탈 구조화를 실천하는 데 여성미술은 재해석 되어지고 있다.

 

 

3. 한국의 여성미술 전환기와 이은정 작가

  우리나라 미술계에 여성과 미술의 등장과 페미니즘 미술 이론은 1980년대 말경부터 1990년대 초로 본다. 가나아트나 월간미술, 그리고 미술세계 등 국내 미술 전문 잡지들이 중심이 되어 여성 미술을 다루고 조명하여 화제를 모아 온 시기이다. 여러 환경에서 이론가들은 논제와 기사를 통해 시대 역사적 여류작가를 연구 조명하는 일들을 해오면서 유럽미술 현상과 우리나라의 페미니즘 미술을 섬세하게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여성과 여성미술 여성주의 미술 등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구체화하는 일들로 여류작가라는 지칭이 여성작가와 함께 사용되어왔다. 여러 논의와 논란의 과정에서 사회 통념의 과제처럼 여성작가라는 용어가 일반화되며 한국 사회 여성미술과 여성화가의 지위를 구체화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으로 여성미술이 등장하여 여성다운 감수성을 드러내는 미술과 페미니즘 미술로 구분되는 개념을 구체화하고 학술적으로 정리가 이루어진다. 이슈의 중심에는 한국 미술사에 큰 사건과 새 장르를 이루어온 민중미술 내의 여성화가 활동이 주목을 받게 되고 이론적 중심이 되었기에 가능하다고 본다. 화가의 활동을 담론하는 것은 평론가의 미술 사회적 의무이기도 하다.

  한국사회 여성미술의 전환은 후기 모더니즘의 해체주의에 의한 탈 중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이후의 시대정신은 권위주의 체계와 가치의 붕괴를 가져오면서 문화 전반에 걸쳐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류를 이루었다. 혼돈의 시대 미술의 영역에서도 장르간의 해체와 통합, 실제 이미지의 대체 등, 해체주의적인 철학적 영향들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해체적인 경향은 문화 예술계 현상으로 인하여 현대미술은 그 가치의 기준이 다원화로 바뀌는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여성미술계 내의 현대성에 있어서 존재의 희미함과 해체, 다양한 이미지의 사용이 여성의 삶들을 작가적 정신과 사회 현상에서 다원적으로 표현되어져 왔다. 20세기 미술의 영역이 해체라는 데리다 이론을 수용하면서 각각의 장르 영역에서 표현되는 양식들이 정신적 지향성과 시대정신인 차이는 여러 형식으로 나타났다. 차별의 생산하고 해체를 재결합하는 후기구조주의와 모더니즘 여성미술은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결과에 따라 전환기 미술영역에 영향을 미쳤음을 알 수 있다.

여성미술의 구조는 여성작가들의 공동체 구성으로 성격이 달라진다. 집단 창작으로서의 저항인 여성미술이 운동의 성향으로 평가되면서 나타나는 미술계의 방향잡기로 해석한다. 여성 작가로서의 평가가 여성미술을 실천하는 개인의 화가로서의 미술사에서 집단의 움직임이 주는 여성미술의 존립은 위협적이거나 배타적인 시각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단지 남성성과의 대결 구도가 여성미술인가라는 의문들이 생겨나게 된다. 여성 작가의 지형이 탈 중심의 변화로 여성 미술의 지위를 얻어 가는 과정에 탈 부계사회 지형의 협의적 한계로 보아져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 여성미술이 세계적 변화의 흐름과 어느 정도 수평을 이루며 걸음의 발끝을 맞추어 가는 자생적 부분이 주목을 받고 있다는 점을 관과 해서는 안 된다. 한국적이자 동양적, 혹은 유교 환경의 지역 풍토에서 태생 하게 된 참여 여성미술은 젊은 페미니즘을 일컫는 영페미나 넷페미로 리부트 되어가고 사회 환경을 미술과 접목하는 디지털 실천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여성 미술계는 가부장제 해체와 같은 아직도 유효한 전시대 여성미술운동의 기본과제에 지속적인 환경을 미술로 만들고 있다. 이러한 절대적 세대 간 연대 행위는 단절보다는 연쇄적 변화 속에서 발전하는 여성 미술의 미래를 기대하게 한다. 여성성을 기준으로 보아 세대에는 의식의 간극은 없어 보인다. 다만 행위로서의 미술표현에 차이가 나타난다고 보는 견해가 크다. 미술운동으로 여성미술은 동시대의 한경으로 본다. 물론 삶의 경험 치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는 부분들이 있지만 이는 그 나름의 의미 있는 교류가 되기도 한다. 여성적으로서의 미술이라는 매개 연대의 역량 은 개별 작가에서 소규모 집단강화로 한국 여성화단과 지역 여성 미술 공동체는 시대정신의 다변화 모색에 앞서가야 한다. 전환기가 따로 있지 않은 것이 우리 여성 미술의 현재와 환경이다. 이러한 상황적 환경으로 보아 이은정작가가 여성을 소재로 하며 여성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의 전환기에 속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작가 본인은 스스로가 다루는 작업의 성향일 뿐 여성미술에서 페미니즘 작가로 분류하는 것에는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유를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제가 페미니즘 사고를 가지고 여성성 작업을 하는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나의 방식을 기준으로 내 작업을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나의 작품을 페미니즘으로 단정 짓기는 어려워요. 제가 생각에는 페미니즘 작가라면 생각하는 방향도 페미니즘적인 사고를 강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봐요. 그 인식을 바탕에 두고 삶의 방식에서도 페미니즘적 요소를 더욱 더 강하게 구축하고 살아야 되는 부분이 있는데 저는 그렇게까지 하며 살지 않은것 않아요. 제가 그냥 단순히 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느꼈던 바를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작가다 보니 여성 주의적 경향은 있지만 페미니즘 작가라고 제가 이렇게 주장하기는 좀 어렵긴 하더라고요. 페미니즘적 사회운동으로 저의 삶까지 많은 부분에 대해서 철저하게 연구하고 행동하는 것에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여성을 생각하고 여성을 생각중심에 두는 보다 선명한 작가들이 있기 때문에 저 스스로는 페미니즘의 계열에는 있지만 강한 주장을 하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니다.”

  지역사회 환경은 한국적 정서와 맞닿아 있지 않은 것은 지역의 현실적 문제다. 페미니즘 미술이 남성성의 부정으로 여성성을 강화시키는 운동의 경우로 이해되기에 지역의 특성을 수용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평등성을 주장하면서 동등한 자격을 성취하고 얻고자 운동으로 미술의 한 장르구분에 참여하는 예술가들과의 차별성을 이해하는 부분이다. 이은정 작가가 인물 초상 여성에서의 이야기 전개는 주제에 접근 하는 방법이 운동으로서의 여성미술과 차별화 된다. 이러한 작가의 의식은 삶의 과정에서 주제가 이야기 하지 못하는 인식의 깊이를 견인해 내는 작업으로 해석되어야 했다. 그렇지만 작가나 작업의 내면에 항상 전환을 위한 준비는 있고 그 곳이 그가 표현 하려는 여성미술가의 활동이 전환의 장소이자 때인 것이다.

 

 

4. 동양 미학적 관점에서 이은정 작품

  이은정의 작업을 이야기하기 위해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한다. 이은정 작가의 인물초상은 한국화의 필선을 기본으로 그의 작업은 붓의 흐름을 따라 해석을 달리하고 있다. 중국의 필법에서 유래한 형상을 통해서 정신을 표현하는 이형사신1)(以形寫神)은 전신(傳神)에 의미를 두고 있기에 정신을 전하는 것으로 대부분 초상화를 말한다. 이러한 초상화는 대상의 형상을 위한 것에서 초상의 정신을 담아내는 것이다. 이를 전신사조(傳神寫照)로 표현하며 사조는 작가가 대상의 형상을 그려내는 것으로 전신은 그 대상 속에 숨겨져 있는 정신을 그려내는 것으로도 풀이된다. 이후 여러 주제로 변화 하지만 이은정 작가의 전신은 초상화에 중심을 두고 있되 선법의 기본 정신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 즉 정신을 화면에 작가의 심성으로 전달하기 위한 과정으로 형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것과 부정적으로 이해하려는 태도가 공존해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형의 인식에 따라 형의 제도를 따르고 있지만 각기 다른 양상으로 표현한다.

1)외물(外物)의 형상(形象)을 빌려 내면의 정신을 표현. 전신의 이론을 명확히 제시한 것은 중국 동진東晋 고개지顧愷之. 회화 창작 시 여러 인물의 전형적인 정신과 마음을 파악할 것을 중시함

 

  이은정의 작업은 철저한 동양 미학을 수용한 것으로 그의 인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그의 그림은 선이라고 자주 이야기해 온 것처럼 선에서 자연 인물의 상을 나타내고 있다. 즉 자유로운 선의 흐름은 시각의 이동을 주도하고 있기에 고정된 시각의 대상으로 리얼리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손의 감각을 붓에 기운을 전달하여 기의 흐름을 형이상학적 선으로 대상의 정신을 추상화하고 있다. 작업의 안에서 화면을 구성하는 작가의 정신은 시간을 자신의 의식의 내적 체험에 두고 공간을 외적 체험으로 구분하여 시공을 자연스럽게 한 공간에 나타내고 있다. 동양미학의 화법은 그림을 그리는 관계에서 정돈되거나 정리되지 않은 흩어짐을 법이라는 것으로 혼돈을 최소화하는 데 있었다. 근본(根本)이라는 것이 그 법의 경계로 보아지는데 단어를 그대로 표현하면 뿌리의 모습이다. 동양화의 선이 한번 그음으로 인하여 만물이 생성되는 것으로 보아 신기하기도 한 과정으로 선법이자 신묘한 세계를 탄생시키는 연유로 보는 견해가 규정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 진 것이다.

  한국화, 동양화라 지칭되는 문제는 오래된 이슈이긴 하지만 동양의 미학을 수용하여 이은정 작가의 작업을 논하기 위해 동양화라 칭해 보겠다. 동양화는 당연히 선의 예술이다. 그렇기에 인물을 포함한 모든 자연의 표현방식에서 선은 대상을 표현하는 성격을 나타내는 요소이다. 이러한 선의 미술은 고정된 시각에서 바라보는 대상의 리얼리티가 아니다. 여기에는 자유로움이 존재하며 이 자유로움은 시각의 이동에서 가능하다. 선의 필치와 필력은 작가마다 다르듯이 작가에게서 발생하는 기운으로 선의 필은 형이상학으로 해석이 된다. 시간을 나의 의식의 내적 체험이라고 하고 공간을 외적 체험이라고 한다면 시공은 결국 하나의 집합체로 윤화가 되어 화면을 시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선과 선의 경계가 하나로 결합하여 에너지로서 대상을 드러나게 하는 응물상형이라 할 수 있다.

  그녀가 2001년 첫 개인전에 등장시킨 인물은 여성에 국한시키지 않았다. 그가 그 흔한 산수화나 화조와 같이 다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자연주의 내면과 인물 자연주의 내면에서의 자아 찾기에 더 가까이 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가는 이유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물론 학교에서 학습한 여러 과정의 주제들을 표현하였지만 그래도 인물은 내면을 읽는 중요한 주제로 보았어요. 인물을 인물의 내면이나 공간 내면을 화면 안에서 어떻게 표현을 할까가 작가적 고민인거고요. 그런 정신성이나 관계성 등에 대해서 스스로 배워 나가는 시기였고, 인물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한국적이면서도 동양의 정신이 바탕이 된 그런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인물을 드러내는 방식에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죠. 그러다보니 머리카락이나 인물 표현에 의해서 화면 내 구조가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 번복 작업을 해왔어요. 이렇게 동세와 구도와 표정 등을 통해서 보여주기 위한 의미를 두고 계속 인물그림을 그려왔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는 이제 점, , 면 중에 선적인 요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선적인 요소를 몸에서 나오는 선과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선들을 이용해서 표현을 하는 작업을 한 것이었죠.

  이은정 작가가 이야기 하고 작품으로 실천하며 발표한 작업은 이후 10년이 지나며 새로운 경험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으로 한 단계 진화를 하였다. 인물화의 중심이 여성화로 상당부분 기울게 된 것은 가계의 중심이 남성세계에 머물러 있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경험하게 되면서 부터라고 보여 진다. 경험은 결혼이 준 개인의 경험주의 변화 환경이다. 작가에게 이미 습득된 동양회화의 미학이 여성 삶의 미학과 양분되면서 혼돈 과정이 화가로의 길에서 여성 화가로의 길로 달라진 부분이다. 기존의 나에서 새롭게 발견되는 낮선 여성성의 발견과 그로 인한 임신과 출산은 가정 이전의 가정에서 자신과의 연결 부분을 작가정신으로 찾으려는 시도는 오히려 강해진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마친 후 문화의 차이를 발견한 이은정 작가는 여러 소재에서 여성의 불안함을 표현 한다. 예를 들면 그가 그린 꽃에서 꽃이 가지는 아름다움과 향을 가진 이미지가 아니다. 어딘가 불편하고 불안한 가공을 표현하고 있다. 불편한 것을 계속 불편한 걸 보여주고 싶고, 백합을 그려도 그냥 백합 그리는 것이 아니라 꽃은 드러내되 잎사귀는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인공화 된 부분으로 표현하여 꽃의 줄기를 빨대를 끌어 들이거나 하는 일에서 여성성의 불안감을 드려내려 한 것으로 보인다. 미술에서 불안은 표현 기법의 일부분이다. 나타나지 않은 현상을 불러오는 감정이기도 하고 작가의 감정을 소재에서 견인한 대상을 일반적인 상태로도 환원하지 않는 기술에서 나타나기도 한다. 화가들은 그들이 그려내는 불안에 주목했다. 미술이 불안을 이미지화 하는 이유는 화가들의 일상을 관람자와 동일한 의식을 요구 하는 행위이기도하다. 이은정작가의 불안은 소재와 소재들 관계에서 복잡한 감정들이 혼재하고 있다. 각각 별개의 소재들이 결합하여 화면 안에서 불안한 심리를 묘사하고 있지만 결국 관객에게는 작가의 내면을 이야기하는 것이 중심이 된다.

  미술은 다소 복잡한 심리나 언어적 표현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이다. 불안은 작가가 자아 인식을 강화하고 작가 개인의 정신적 경험이나 삶의 한 부분에 대한 고독하고 지독한 자기영역이다. 미술 창작자의 과정에서 자아를 어느 대상으로 몰입하여 직, 간접적 환경경험의 불안을 미술이라는 도구에 의해 자아를 그 안에서 탈출시켜 지금의 순간에 집중, 하나의 작업으로 탄생시킨다. 미술의 언어는 시각이 말해 주듯이 시각자의 해석에 따라 언어는 달라진다. 이은정작가가 그가 도입한 인물 초상과 정물에서 화면내의 표현한 미술 언어는 스스로 터득한 기술이다. 이은정 작가는 이를 통해 작가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을 해석하고 자신의 미학을 타자에 전달함으로써 작가적 감정의 해방을 찾아내는 관객과의 공감대를 갖게 된다고 보여 진다.

 

 

5. 모계 가계도에서 여성성

  모계사회Matrilineality는 가문과 혈통을 어머니의 핏줄을 기준으로 삼는 사회로 상대적인 것이 부계사회patrilineality이다. 모권사회matriarchy와는 구분이 되어져야 한다. 마빈 해리스2) 의 저서를 보면 모계사회의 여성이 가부장적 부계사회의 남성에 비해 압도적인 주도권을 가지지 못한 이유를 이야기한다. 모계사회는 가정 내 성별 권력의 위계를 가를 때 여성이 승리한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타 부족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힘든 약소 집단들이 여성의 유출을 막고 종족을 보존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부계사회의 기록이 남성 중심의 사회 인식환경인 것이 단편적이자 일반적인 의식이다. 이러한 환경으로 인식을 한다면 시대변화의 과정을 인지한 모계의 선택으로 작품화하는 것은 유교적 한국 사회에서 쉽게 통용되기 어려운 주제 일수도 있다. 이은정 작가가 여성작가로 불리는 것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크다. 그러한 연유는 그가 그려왔던 일련의 인물에서 여성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충분히 있었고, 그 과정에서 세대가 느끼는 의식들을 수용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단지 성을 따르는 것이 남성주의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작가의 설명이다. 즉 모계의 사회를 지향하는 시대 변화에 부계의 권력에 대항하는 힘이 부족하다면 모권의 강화로 시대의 주류를 여성으로 인지하려는 정신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으로 이은정 작가의 작품을 해석할 수 있다,

2)미국의 인류학자

 

  모계를 중심으로 가계도를 연결하는 것과 관계된 인물을 작업으로 엮기 위한 작가의 정신은 작가 스스로 여성의 모계 질서를 모계사회로 해석한 한국사회 부계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모계사회라는 개념은 우리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것으로 부계 사회가 아닌 여성을 중심으로 존재하는 사회다. 아마도 작업의 본질은 분석한다면 모계사회는 부계사회보다 더 나은 사회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모권사회의 이론적 제기는 스위스 인류학자 바흐오펜Johann Jakob Bachofen3)에 의해서이다. 그는 모계를 통해서만 계통을 계산할 수 있으므로 모계가 부계보다 일찍 형성되었다고 기술한다. 이후 원시적인 모계 씨족은 모든 문명 민족의 부계 씨족 이전의 단계로 보았다. 이를 근거로 여러 부족의 조사를 통해 모계에서 부계로의 원시사회의 발전 시스템을 제시하였다. 모계사회는 일종의 원시적인 사회 제도다. 긴 원시시대에 대다수 민족은 모두 수만 년의 모계 씨족의 역사를 겪었다. 이런 사회에서는 부계제도가 불가능하고 어머니를 통해서만 후예가 추인되기 때문에 어머니가 사회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고 여성이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던 모권제 시대가 있었다. 문명의 토대를 마련한 모계사회는 혈연상속제도, 사회관리, 사회분업, 전수와 상속의 몇 가지 조건을 갖춘 사회체계를 말한다.4)

3) 스위스의 인류학자(1815~1887). “모권론(母權論)”저술.

4) 구조기능주의 관점에서 바라본 모계사회 유지 요인 분석서울시립대학교 대학원 국제관계학과 오원 석사학위 인용 p13~14

 

  먼저 모계 씨족사회는 생산수단을 집단소유하고 집단노동을 하며 노동생산물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재산은 집단으로 상속되다. 그리고 여성을 중심으로 사회를 관리한다. 가문의 자손은 주로 모계의 성씨, 재산을 상속받으며 모계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낸다. 모계사회 중에 여성이 사회생산의 주요위치를 책임지고 있고 가족에서 혈연에 의해 씨족이 형성된다. 모계씨족은 나이 많은 부녀자를 씨족장으로 결정하였으며 모계사회의 남녀분업은 여성의 대인 교류, 언어, 원시 종교의 핵심 성분과 일상 노동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며 가족의 경제권도 갖고 있다. 지구상에 남아 있는 몇몇의 부족이나 민족의 이야기 이지만 여성, 즉 모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연구 되어야 할 부분이다. 모계가 부계로 전이 되는 이유는 사회생산력 발전의 필연적인 결과라는 주장이다. 수렵과 채집 단계에서 축산과 농업 단계로 전환되는 부분은 노동력의 필요로 힘의 균형이 변화된 것으로 본다. 현대에 와서 유발 하라라5)의 주장은 그의 저서에서 이야기 하듯 농경사회의 선택은 인류가 좀 더 경제적 환경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인류는 오류를 가져왔고 더 험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였다고 기술한다. 모계의 전설이 이해되는 현대 학자의 주장이기도 한다. 하라리의 주장이 부분 여성성의 노동력에 의한 모계 론과 일치한다면 사유재산 발생 이후 빈부격차와 계급대립이 일어난 농경 정착에서 성 종별 갈등이 발생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갈등은 계층 간의 싸움으로 확대되어 여성은 사회에서 종속적 지위가 된다. 따라서 모계사회가 부계사회로 전환될 수 있는 토대는 성별 분업과 잉여생산물에 따른 여러 상업 시스템의 출현에 가사노동이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5)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사피엔스: 유인원에서 사이보그까지』 저자

 

  한국 현대 사회가 여성성이 강조되고 사회 전반에 여성의 활동이 강화 되면서 모계의 사회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는 사회가 세대 층간의 변화로 기능의 공평성을 여성과 남성의 구분 없이 수평의 구조를 향해 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현상이다. 기능은 구조를 생산하게 된다. 구조를 다지기 위해서 구조기능이 생겨나게 되는데 사회구조의 필수적 요건은 자생적으로 생산이 된다. 그 중에서 사회 체계가 환경에 적응을 해야 하고 체계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여 목표 도달을 위한 생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렇게 개별화 될 수 있는 목표는 동질성을 가지는 구조들의 사회 구성을 위한 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동체적 사회 통합은 체제의 잠재성을 유지하며 진화를 하게 된다. 모계 사회가 이루어지기 위한 비 강제적 사회변화로 자연스러운 시스템의 탄생은 사회학자들의 이론적 환경을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모계도가 있다는 것만으로 여성성의 완성으로 단정 할 수 없다. 한 세대가 30년으로 본다면 여러 세대를 경험해야 경험으로 얻은 시행의 착오는 그 기간을 단축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은정 작가가 부계의 획일적 환경을 온몸으로 경험하여 그의 남편과 여성성 회복의 작업으로 회화적인 작업에서 사회 환경의 모계를 지향한다면 여러 환경을 공동체 의식으로 개선 할 필요가 보인다. 모계사회 기능주의는 가정이 존속하는 기능과 사회화의 과정이 필요하다. 일반적인 교육과 더불어 중요한 가정교육에서와 사회 환경 교육이 일반 생활과 동일시되어야 한다. 지역사회의 구성원을 하나의 교육대상으로 종교관계와 전통적 의례에 의한 문화 활동방식을 통해 실현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다양성의 문화 활동은 여성의 지위와 사회 참여의 방식 론에 지식사상을 담게 되고 여성 스스로 자양의 환경을 강화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이 바꾸는 세상은 거창한 변화를 사회운동이 아니라 작가의 작품에서 관객과 사회가 인식의 전환을 하는 계기가 된다면 미술의 힘은 모권으로 분명 여성성의 지위에 대한 저항으로 작용 할 것이다.

 

 

6. 종부의 그림자에서 자아 찾기

  현대미술은 미술 안 밖으로 시각과 예술 철학에서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개념화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서 관객은 마치 미술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것처럼 인식되었다. 그러다보니 평가와 해석은 전문가 영역의 전유물처럼 받아들여졌다. 미술의 전위성이나 심미적 가치는 당대에 대중적 평판과 찬사를 불러일으키진 않지만 괴리감이 지나치게 성장한 것은 한국사회 미술현장에서 나타나는 현실이다. 이은정 작가는 종부의 작업에서 자아를 발견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은정 작가가 작업의 방향성을 고민하던 기억은 2008년은 결혼 후 시부모님을 모실 때이다. 한 작가가 여러 환경을 경험하며 자신의 작업 방향을 구체화 하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정이자 다양한 표현에서 어느 한 부분을 오려내 듯 창작하는 일도 결정과 판단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작가는 당시의 고민에서 지금의 여성 삶에서 이미 여성의 가계도를 그리고 있었다. 결혼 후 남성 중심의 구조가 되어 친정에서도 구심점이 남동생한테 있고 그 모습에서 나라고 하는 여성의 지위에 대한 고민이 커졌을 것이다. 자신이 이미 저쪽 사람이 되어 나의 청년기 삶을 살았던 집이라는 장소성이 사라진 것이다. 존재성이 희미해지자 아버지는 너의 이름이 족보에 있으니 그것으로 너의 실존은 여기에서 찾아야 한다는 부분에 더욱 큰 실망을 받게 되었다.

  시댁 쪽 여성가계가 이모들이 여러분 계시고 어머니까지 해서 다섯 분, 이분들이 모이면 커다란 여성 권력의 구성이었다. 이은정 작가는 여성 가계도가 종가나 3대나 4대는 되어야 가계도 형식을 취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시부모님 댁의 모계를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던 차, 그분들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을 만들어갔다. 다행이 화가인 남편의 적극적 지지와 도움으로 여성의 초상을 그리게 된 과정의 출발이었다. 당시의 인물은 지금처럼 흐린 화면의 초상이 아니었다. 선명한 선과 색으로 인상을 찾는 일에 집중을 해 왔다. 아마 가족사를 인물중심으로 그리다보니 닮음에 대한 의견들이 작가에게 부담이 되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작가가 인물 초상을 그리기 시작하자 여러 부분에서 많은 의견들을 주었다고 한다. 작품 창작의 의도가 너무 좋다는 격려와 함께 종부의 여성 가계에 내용을 있다는 찬사이기도 했다. 그러지만 비평도 멈추지 않았는데 주로 지나치게 인물 중심이 되어 초상화의 범주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본인의 의도를 쉽게 버리지 못하였다. 초상의 내면이 숨어 있는 유전자가 연결이 되고 성씨가 기존 족보에서 바뀌어가는 성씨와 다른 성이 만나 제3의 여성이 탄생했을 때의 여성성과 같은 이야기를 표현 한 것이다.

  존재하는 성씨를 물려줄 수 없는 것에 대한 여성성의 불합리를 그림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고, 그와 관련한 다양한 숨은 이야기를 펼쳐 놓았지만 작가의 의도와 인문학적 가족구성은 사라지고 말았다. 그의 작업이 미술계 관심으로 전시를 반복 할수록 여성성에 주목을 하고 있고 미학적으로도 유미주의 초상이나 기록을 위한 초상이 아닌 여성의 시대정신임을 이해하였다. 문제는 대중의 작품을 대하는 보편적 시각에 작가는 다소 중심이 흔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일종의 닮음에 대한 반복적 지적이 되살아났고 창작 작가의 의지로 표현한 선들로 인물의 성격을 표현 한 것은 평가 대상으로 작가에게 되 돌아왔다. 그것은 화면 안의 인물이 나인데 나의 성격을 나와 다르게 그려낸 것에 대한 아쉬움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물을 그리면 그 인물의 표정이나 얼굴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임은 새롭게 느끼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작가에게는 가장 큰 갈등이자 변화의 모서리에 서 있는 순간이다. 작가는 창작의 큰 범위를 설정하여 그림으로 그린다. 하지만 작품으로 보여 지는 것은 작은 그림이다. 창작의도의 범위에서 작가와 관객이 느끼는 큰 괴리감이다.

  이은정 작가는 작가로서 큰 선택을 해야 했다. 가계도의 인물초상과 인물을 흐리게 그린 창작 작품이 함께 걸리는 공존 전시를 시도하여 스스로를 실험하는 모험을 선택한 것이다. 인물 초상이 누군가를 닮아야 한다는 관객의 시각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누구나 표현하는 기법에서의 방법을 전환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흐린 초상의 실험이다. 평가는 걱정했던 것이 현실로 나타나기도 했다. 인물 초상에서 느낀 감상자들이 흐린 초상에서 애써 대상을 읽어내려고 한 부분이다. 대상 인물이 드러나지 않아 그림을 보는데 힘이 든다는 평가와 화면에서 초점을 맞추려 하니 어지러움을 느낀다라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러한 평가들에서 그의 그림에 자신감을 얻는다. 변화의 변화를 찾는 과정을 작가적 시점에서 관람자시점으로 사고를 전환한 이은정 작가는 재료를 연구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다. 재료적 표현이나 재료 연구에 10여년 이란 시간을 투자 하게 된다. 초상 인물 대상여성을 직접 인터뷰를 하고 성격을 표현하는데 많은 벽들이 작가를 어렵게 했다. 종부의 가계는 3대가 이어져야 스토리를 만들어 갈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쉽게 인터뷰에 응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의 가계가 가지는 성격이나 개인적 의식들이 모아져야 하지만 자신이 대상의 인물됨을 거부하는 경우가 발생을 하기도 했다. 문제가 되는 벽은 생각을 바꾸어야 했다. 작가는 내가 생각하는 범위를 협소하게 보지 말고 넓게 보고 큰 주제를 고민하는 우회적 방법으로 여성의 가계도를 그려나갔다. 그러한 과정에서 또 다른 그림 소재의 변화는 지폐속의 여인을 작가의 방식으로 해석하여 표현 하는 것이었다. 과거 엄청난 남성사회에서 여성으로 지위를 얻기 위한 고단함 삶이 어쩌면 영웅이 되어 현대사회 가장 상징적 지폐의 인물이 된다는 것은 모계에서 얻어낸 여성의 발견이자 작가 스스로의 발견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도 이은정 작가는 종부가계도 이외 몇 개의 작품을 걸었다. 이야기와 작가의 고민들을 연결해 보자는 의도로 보였고 이후 작업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관객의 이야기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의 종부사나 영웅의 이야기에서 화가는 어떠한 지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가의 자아 발견하면서 그녀는 성의 다양성, 다민족의 여성성은 작업의 중요한 주제로 떠올렸다.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한 여성의 모습에서 다문화의 삶은 어떻게 그려야 하는 가의 숙제 같은 것이 작가의 창작열을 조여 왔다. 주로 동남아시아 여성의 모습을 표현하기에 거리감 좁히기는 어려운 창작 조건이었다. 자칫 대상 여성의 이미지를 훼손한다거나 작가 스스로도 화가로서 부담을 가지게 된다면 이는 인물에 매몰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한국사회 가족계통의 여성성과 인터뷰를 통해 스토리를 만든 여성의 모습, 다문화 사회의 여성들 모두 동일한 생존과 고단한 삶과 함께 국가 구성원으로 살고 있음을 재 확인 하게 된다. 이은정 작가는 이즈음 범위를 넓혀 관계성을 연결 짓기 위한 소재의 변화를 찾는다. 그녀 머리에서 돌아다니던 포도나 백합 등이 그것이었다. 포도 같은 경우 많은 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다산을 상징하거나 아니면 여자들 모여서 수다 떠는 그런 느낌으로 정물의 고유 이미지를 벗어나려 했다. 또 백합은 각인된 청순, 순결의 여성 이미지가 가장 강하기에 꽃을 그리되 잎과 줄기는 다른 소재를 접목하여 불안한 여성의 현실을 표현했다.
  강요된 순결로서의 꽃, 여성의 다산을 아주 오래전부터 이미지화 한 우리 한국화의 현실, 가려진 사회 안쪽, 여성가계에 길들여진 삶, 여성 작가의 한계들의 발견은 이은정 작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다. 불편함을 더욱 불편하게 한다는 것은 불편함을 익숙해 하기에 자신의 삶이 된다는 것에 작가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백합을 그리되 꽃은 그리고 잎은 안 드러내고 인공 화된 부분을 빨대로 줄기 대신표현을 하였다. 정물의 소재에서의 표현 역시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것의 의도는 가까이 있을 때는 대상의 이미지를 잘 모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이는 것처럼 생각이 시각을 지배 하는 것이다. “형사에 머물면 순간으로 사라진다, 거울에 비친 꽃과 물속에 어린 달은 환영이지만 오히려 환영이 그처럼 아름답고 그처럼 경계와 여운의 맛이 풍부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잊기 어렵게 한다. 그것은 미의 환영이고 환영의 미이다. 환영이 미가 되는 것은 그것이 인식에 호소하거나 윤리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본체에 대한 오묘한 깨달음과 체득임을 설명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모두 인식되어 있는 형상은 이미 형상의 본질이 아님을 미학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미지는 환영이 되도 하고 원형이 되기도 한다. 작가의 이도와 창작의 방향이 일치 한다면 관객의 시각을 지나치게 의식하여 화면을 구성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여성의 종부 가계도나 여성의 삶과 깊이 관계하는 작품은 창작의 범위와 작품성, 모두 작가의 의식 내에 있어야 한다. 의식과 인식은 의도한 창작을 위한 무한한 자기 연구와 함께 그림은 자신이고 여성 또한 자아의 인식 내부 깊숙이 자리해야 작품으로의 가치는 지위를 얻게 된다. 이은정 작가가 여성에서 모성 성으로 자리를 이동한 이상 그녀 또한 남성사회의 가계에서 팍팍한 삶을 그려 나가야 함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성의 내화(지력 구조), 이성의 응취(의지 구조), 이성의 적진(심미 구조)는 주체성의 인성 구조라고 한다. 인성 구조는 개인 심리에 구체화 되면 창조적 심리 기능으로 전환이 된다. 하여 자신을 개척하고 풍부하게 하여 자유 직관(미로써 진을 인도한다)’, ‘자유 의지(미로써 선을 쌓는다)’, ‘자유 의지(심미 쾌락)’을 이룬다고 했다.” 창작의 조건과 같은 리쩌허우의 미론은 이은정 작가가 그려나가는 미술의 시대정신의 과정으로 보여 진다. 심미적 구조는 이성의 판단이고 이성의 진정성 누적으로 체계화된 미의 기능이기도 한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희망 하는가?’는 칸트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존재론적 질문이다. 칸트가 지향하고자하는 판단력은 예술이다. 예술은 관념이고 관념은 존재론의 의식 안에 있다. 작가론 적 인식은 창조적 환경을 만들어 가는 처절한 작가 내면의 싸움이고 진리를 위한 철학의 항해이자 미의 문제에 도달하기 위한 철학적 삶이다. 이은정 작가는 여성 가계도에서 여성성을 찾아내려는 노력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